깊고 깊은 밤, 우리가 아직 벙커에 머무르고 있던 날.
네 얼굴을 훑었다. 이마, 콧등, 입술. 입술. 입술에서 멈췄다.
- 이 세상 진짜 x같고 더는 참기 싫다 싶으면 슬쩍 알려주고.
- 알려주면 어떻게 해줄검까.
- 글쎄, 같이 이 X같은 세상 다 꺼져버리자, 하고 동네 한바퀴 마라톤이라도 하고올까. 차 찾아서 GxA하던가....
그 전의 너는 나에게는 탈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준 사람, 나랑 약속을 지켜준 사람, 고마운 사람, 좋은 친구. 그 정도였다.
- 엄청나게 건강한 해소법이라 쫌 놀랐슴다. 차는 생각을 좀 하고... 인간 통조림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누구보다도 빛나고, 찬란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죽을 것 같은, 심장에 총 맞아도 아프잖아! 하고 벌떡 일어날 것처럼, 아주 만약에 죽는다면 늙어서 죽을 것 같은 너였다.
- 같이 죽어버리자-, 하는거니까 통조림 되려고 하는거지.
적어도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절대로 안 고를 것 같은 너였다.
입술을 가로로 쓸었다. 조금씩 벌어지는 입. 네가 숨쉬는 숨이 새어나왔다. 숨 쉬고 있다.
그 날 이후부터 죽지 못해 살아 왔던 저였는데, 그땐 진심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했다. 죽자는 말이 제게 구원이 되었다. 어차피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끝에 너도 있다는 것이 안심되었다.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키스하면 너는 눈뜰까. 아니, 둔해서 모를 것 같았다. 실은 눈 떠도 괜찮았을거 같았다. 눈 뜨면 뭐하냐고 묻겠지, 그럼 나는 하고 싶어서 했다고 해야지. 방금까지 만지고 있던 것에서 손을 떼고 입맞췄다.
네 목에 남아있는 제 입자국이 네가 제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도어. 고민이 있지.
도어는 가까이서 서 있는 데이빗을 바라봤다. 도어는 납득했다. 평소 같았으면 저멀리서부터 데이빗을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꾸왁 안거나 형! 하고 불러 세웠을텐데, 데이빗이 저를 발견하고 먼저 걸어올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도어는 저를 내려다보는 데이빗의 표정에 그저 웃어버렸다.
네.
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음,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래.
형. 저는 건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구석진 곳으로 가서야, 도어는 입을 열었다. 형은 미간을 모았다. 그것을 본 도어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그치만 이건 사랑이라고 하기엔 좀 틀린거 같아요. 저는, 그 사람이랑, 닿아있고 싶고, 앞으로도 쭉 계속 같이 있어줬으면 하고, 행복하든 아니든 -물론 행복한 쪽이 좋지만요.-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건 형들에게도 느껴져요.
데이빗은 그런 저를 내려다 보다가, 툭, 물었다.
너는 나하고 키스하고싶나?
아니요. 그런데 형하고는 섹파가 아니잖아요. 건하고는 섹파라서 그런거로 느껴지는게 아닐까요.
섹파는 성욕을 해소하려고 하는 거로 알고 있다. 너는 건하고 하면서 뭐를 해소하지?
... ...
도어는 그 자리서 굳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의 도어에, 데이빗은 그런 도어를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다시 물었다. 이번은 확신이 담겨져 있었다.
애정? 애착? 그런데 이건 너도 나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번 더 물어보지, 너는 나하고 키스하고 싶나?
...아니요.
답이 되었나?
네. 된거 같아요. 고마워요.
마른 세수를 하면서 여러번 끄덕거렸다. 힘내라는 쓰다듬이 있었다. 힘내라. 히히. 내가 살다 동생 연애고민도 상담해주고. 으하항,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래.
이러다 터져 죽으면 어쩌냐. 너무 좋아서...... 큰일났는데.
두근두근두근, 격하게 뛰고 있었다. 네 미소에 숨이 턱 막혔다. 그때 저는 깨달았던 것일지도.
아.
나는, 너에게는, 이 말을, 안 하고는, 못 참겠구나. 못 살겠구나, 싶었다. 가슴이 격하게, 세게, 뛰었다. 떨리는 입을 겨우 열었다.
"... ... 건."
"응."
"사랑해."
나의 친구, 나의 구원,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간 사람, 나의, 내...
내 사랑.
고록입니다이만말을줄이겠습니다............
답록: https://ruvel01.tistory.com/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