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 싫은 이유는 딱 하나뿐이야

너한테 작별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지.

/ 지금 사랑해도 될까요?_제임스 패터슨





 너랑 만나면 항상 비밀이 생겼다.


 -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비밀으로 해라.

 - 당연한 걸 왜 말하냐. 오냐, 이 형님이 다 비밀으로 해주마.

 - 뭐? 누우가 형님이라고?

 - 내가!


 너랑 나눈 비밀은 누님과 형님에게도 숨겨야했다, 작은 일탈 같아서 웃음이 실실 웃음이 나왔다. 누님과 형님에게 좀 더 빨리 인사를 안 했다는 이유로 벽을 보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 동안에 너랑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너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그런 기대로 가득차서 그 지루하고 긴 시간이 전혀 안 지루해졌다. 삶이 다채로워졌다. 금빛으로 빛났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싫었다, 이건 별로다. 그으 훌륭하신 귀족들! 라며 비꼬는 네 말에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고. 확실히 말하는 너를 동경했었기에 저도, 너처럼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서야겠다, 네가 싫어하는 "그 귀족"같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네 옆에 서 있어야겠다. 하고.


 네가 그곳에서 계속 있을 착각을 했다.


 - 태양에 가까워진다면, 날개의 촛농이 녹아도 괜찮지 않은 삶이지 않을까.


 어느날 아침, 네가 떠났다고. 부모님이 담담하게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로스 씨가 찾고 계시다고. 혹시 아는 게 없냐고. '아니요, 몰랐습니다. 그렇군요, 윌이... ..." 이카루스는 이미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네가 깃털 몇 개를 남기고 훨훨 날아갈 때에서야 알았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 확실히 너는 그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지, 하고. 조용히 마음속에서 응원했는데. 



 - 야, 클리프. 어디로 가냐.


 아주 가끔은 힘들었다.


 평소처럼 그냥 벽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었는데. 머리 속 가득히 네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항상 사라져버린 너였다. 처음엔 뭐, 몇년... 그러니까. 네가 어디에 정착하면 연락해주겠지. 금방 저에게 하소연을 하겠지, 그리고 나는 웃으면서 그 편지의 답을 쓰자. 왜 떠났냐는, 그런 말 다 빼고. 그랬구나, 힘들겠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도 잘하면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너도 당연히 평소처럼 힘내고. 그리고 그 놈은 많이 별로다, 이름과 주소를 알려줘라. 몰래 뒷통수를 쳐버리겠다, 같은 답...


 찰싹.


 그리고 뭔가를 봤냐고도 물어보자. 어디가 좋았고, 뭐가 즐거웠냐고도 물어보자... 나중에 자기에게도 한번 데려가달라고. 구경갈거니까, 맛있는 것들을 많이 들고. 오랜만에 횡포를 풀자고.


퍽.


 아주 가끔은 너에게도 제 비밀을 털까,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털어야겠다고. 별거 아니고... 아니, 별거 맞는데... 나는 누님이랑 형님에게 맞고 산다고. 그래도, 나는 꿋꿋히 끝까지 서 있을거니까. 패트릭 가의 사람다운 품위를 세우고, 현명하게 헤쳐나갈거니까. 그러니까, 너는 응원을 해달라고. 같이 욕도 좀 해주고...


우드득.


 ... ... 아.



 고개를 숙여버렸다. 


 3년. 고개를 숙여서 누님과 형님의 발에 입 맞추고 발치를 기어다니면서 배를 내보였다, 개처럼. 3년만에 저는 여러가지를 포기했다. 꿈을, 나를, 그리고... 너를.


 너는 나에게 안 돌아올 것이다. 너는 평생 떠나갔다. 자유를 찾아서. 그래, 실은 사람을 풀어서 너를 찾아낼 수 있었지만 싫었다. 자유를 찾아 떠난 너를, 자유를 그렇게나 갈망했던 너를 어떻게 찾겠어. 네 쪽에서 저에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1년도, 2년도 지나고, 이제 3년이 다 끝나가니까. 아. 왜 버티고 있지. 꽤나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무력감이 고개를 들었다. 윌리엄처럼 떠나갈 자신이 있고? 아니, 없어. 이곳에서 계속 있고 싶어. 누님과 형님에게 대들 자신은 있고? 아니, 없어. 그럼 이유없는 반항만 계속 할거야? 아니.



 그랬더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그냥 가끔 누님과 형님이 바랄 때마다 애교를 좀 부리고. 그 대가로 저는 수많은 돈과, 자유. 그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1년, 20세에 저는 제빵을 배우다가, 문득 빵칼을 봤고. 정신차리고 보니 손목에 빵칼을 대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저는 살고 싶냐, 죽고 싶냐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죽고 싶어하는 쪽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저는 안 그랬다. 아주, 만약에... 아주 만약에. 네가 나를 찾아온다면... 그때, 내가 없다면... ... 너는. 왠지 모르게 나를 찾아 헤맬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편지를 쓰자. 네게 작별인사를 전하는 편지.


 아.


 그때서야 저는 왜 안 죽고 살아있었나를 깨달았다. 저는 너를 떠나보내기가 싫었다. 인사할 생각도 안 했다. 네가 그곳에서 계속 있을 착각을 했다고? 웃기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려던 거겠지. 아니면, 네 말을 제대로 인지해버렸으면... 너에게 작별인사를 전해야하니까. 그건 싫었다. 그후부터 제빵 제과를 제외한 요리는 안 배우기로 했다. 그냥,... 그냥. 살기로 했다. 살아있으니까, 살자. 이유는... 없고. 그래, 그렇게.



 그렇게 살았더니, 기적처럼 너에게 연락이 와닿았다. 「이제까지 잘 살아있었군요, 칭찬의 선물입니다.」 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편지를 받아 들었을 때에는 저조차도 믿을 수가 없어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혹시 날 속이려는 건 아닐까, 저를 놀리려는 누님과 형님의 장난이 아닐까. 스멀스멀 올라온 불신은 네 편지가 쌓일 때마다 차츰 사그라들어갔다. 겨우 제 옆으로 다시 날아와준 새에 저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것도 너무 고마웠는데.



[우리도 이제 슬슬 얼굴을 봐야하지 않겠냐. 내가 며칠 전에 누님께 전시회 표를 받았는데 두 장이라서 너에게 물어본다.

경호원도 다 물리고 갈거니, 너도 편하게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 수 있으면 말해, 표 보내줄거니까.

......

P.S. 얼굴 보고 싶다는 말을 네가 보고 싶었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면 아닌 것이다.]



 긴장이 되었다. 가겠냐? 필요없어. 라는 답이 올것 같아서. 그야, 너는 전시회 같은 곳을 질색했고. 하지만 저는 갑자기 평범한 곳에 간다고 하면 의심하실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처음으로 누구에게 빌었다. 그랬더니,



[표 값 비싸냐? 그럼 보내. 여기 주소는-]



 너는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을 쥐어줬다. 그게 너무 가슴이 벅차오르게 하는 기분이라서. 이 기분을 뭐라고 하는 걸까. 기쁘다는 걸까. 참 오랜만에 창문에 색이 깃들었다.








 네가 제 이야기를 듣더니 화내다 못해 울었다.


 저는 그런 너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살아있었으니까, 너도 보고… 이런 것도 보구나. 


 지쳐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창문에 바람과 함께 이슬 맺은 잎을 물고 온 새가 들어왔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더니 창문 안으로 더욱더 깊숙이 들어와 방 안을 마구 헤집었다. 오랫동안 죽은 듯이 살아 먼지가 수북하게 쌓은 붉은 고양이를 마구 털고, -야. 너 그 집에서 나와. 나랑 살아.- 살도 꼬집고, -골라볼래? 모르겠어? 그럼 싫어하는 거 몇개는 빼자.- 입을 강제로 열고 이슬 먹여줬다. -너는 사람이야, 에델린.- 그게 하루이틀도 넘고, 한달이 되어가니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게 사는 거였구나. 붉은 고양이는 오랜만에 몸을 일으켜서 창문가로 가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고, 뭔가를 바라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래. 그냥 알아줬으면 좋겠다 생각하더라도 이거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자.

나는 네게 확실하게 답을 듣고 싶어.

있잖냐, 에드.

내가 계속 너를 사랑해도 괜찮겠냐?



 리베라. 난 너랑 같이 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어. 장보기, 설거지, 분리수거일, 알 생각이 없었던 쾌감도, 닿아있어도 이렇게 좋을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고.  나를 아끼는 사람이 있다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의 구원자라는 것. 그러니까, 내가 사랑에 빠진다면 당연히 너일거다.


 리베라, 리베라. 유감이지만… 나도 그래. 네게 나에게 입을 맞출 때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아. 이게 설렘이라면 설렘이고,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또 이제 네가 저를 부를 때에 에드.하고 부르는 애칭을 들을 때마다 마치 12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이제 그리움이라면 그리움이겠고, 기쁨이라면 기쁨일거야. 이 기분을 소설으로 표현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사랑이라고 입 모아 외칠거야. 우리가 알던 그 C가 맞냐고,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냐고 놀랄거다.


 리베라, 리베라, 리베라. 나를 숨쉬게 하는 건 네가 유일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네가 유일하다고. 내가 소소하게 행복했던 순간마다, 꼭 네가 있었어. 나는 이미 너로 인해 변했고, 또 변했고, 지금도 변해가고 있어. 너는 나에게 가장 큰 존재야. 물론 누님과 형님도 크시지만, 자주 보고 싶고, 크기를 키우고 싶은 게 어느쪽이냐고 하면 망설임 없이 너를 고를거야. 그리고 너랑 함께 다니면 나는 확실히, 나아질거야. 완치까진 못해도, 적어도 두발로 설 수 있을거다.


 리베라, 리베라, 리베라, 리베라. 나는 너도 알겠지만 네가 알던 옛날의 에델린이 아니야. 나는 나에게 자신이 없어. 언제 또 그 날처럼 툭하고 놔버릴지도 몰라. 너를 답답하게 할지도 몰라. 너를 또 울릴지도 몰라.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망가졌어. 내 삶을 제대로 살 자신이 없어. 12년, 12년이야. 그동안 아주, 가루만 남을 정도로 잘근잘근 밟혀버렸어. 어쩌면 평생 못 고칠지도 몰라. 네가 나에게 무언가를 많이, 오래, 붓고 또 부어도. 내가 가득 채워질 일이 없을 수도 있어. 어쩌면 나랑 다시 만나지 말걸, 하고 후회할 수도 있어.



그럼에도, 괜찮다면.

나는 명확하게, 단호하게, 정확히 답할거야.

응, 리베라.

나를 계속 사랑해줘.


그리고, 나도 너를 사랑하게 해줘.








고록: https://ruvel01.tistory.com/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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